무경계
no boundary, 無經界
한상진
전시기간 : 2025. 11. 19(수) ~ 12. 10(수)
신촌로 129, 아트레온 B1,2
평론글
풍경, 존재와 비존재의 사이를 떠도는
산과 산의, 능선과 하늘의, 산과 구름의, 산과 안개의 경계가 지워진. 원래 한 몸인 분리된 반쪽을 그리워하듯 산과 산이, 능선과 하늘이 서로 파고드는. 산이 대략의 실루엣으로만 겨우 드러나 보이는. 사물 대상에 대한 선입견이 아니라면 어디가 산이고 하늘인지 구분되지 않는. 차라리 산과 구름이, 능선과 안개가 유기적인 한 몸을 일구고 있는(여기서 이루고 있다고 하지 않고 일구고 있다고 한 것은 움직이는 풍경, 이행하는 풍경, 흐르는 풍경, 그러므로 변화무상한 자연, 생성하는 자연의 생리를, 운동성과 생명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시제로 치자면 이루고 있는 것은 완료형에, 일구고 있는 것은 현재진행형에, 생성형에 해당한다). 그렇게 생성하면서 유기적인 한 몸을 일구고 있는 것도 같은. 산의 세부를 가만가만 묘사하다가도 불현듯 크고 성근 붓질이 폭력처럼 지나가면서 세부를 지우는. 새벽에 능선에서 바라본 가만가만한 도시의 불빛이 저만치 내다보이는. 단색으로 드러난, 그래서 침묵하는 것도 같은 바다와 해안선의 접경지역을 내려다보면서 그린. 가만히 보면 그저 시커먼 덩어리로만 보이는 실루엣 속에 골짜기와 같은 세부가 오롯한. 그렇게 어스름한 실루엣 속에 미묘하게 다른 색을 포함하고 있는(다른 색이 없지 않지만, 작가는 주로 청색과 흑색 사이 그러므로 청회색 계조의 색채 스펙트럼 안에서 색을 사용하는 절제된 색채감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연유로 작가의 그림은 단색화처럼도 보이고 수묵화처럼도 보인다. 흔히 먹색을 오색이라고 하는데, 오색에 한정된다기보다는 오만가지 색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먹색을 오색에 비유한 이 비유 그대로 작가의 색채감정에도 부합한다는 생각이다). 능선 위로 희미한 빛의 기미가 감지되는. 첩첩한 산허리를 지나가는 구름에서, 안개에서 습윤한 기운이, 그러므로 물기가 느껴지는. 한껏 물기를 머금은 구름이 비라도 뿌리듯 마구 흘러내리다 멈춘 물감 자국이 여실한. 구름과 안개 사이로 어스름한 산의 형태가 희끗희끗 드러나 보이는. 칠흑 같은 숲속에 저보다 더 짙은 나무 한 그루를 숨겨놓고 있는. 총총한 구름층이, 음영 속에 침묵하는 산의 두께가, 그러므로 산의 살이 만져질 것도 같은. 칠흑 같은 바다 멀리 내다보이는 배의 불빛이 고독처럼 가물거리는(밤의 고독?). 빠르게, 느리게, 가만가만 흐르는 구름의 흐름이 느껴지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파란 기미를 머금은 은회색의 수면이, 대기의 변화에 따라 색깔을 바꾸는 윤슬이 추상화와도 같은(사물 대상의 단면을 풀사이즈로 근접해 그리면 형상은 추상이 된다. 서로 비교해볼 수 있는 다른 사물 대상과의 관계가 단절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추상과 형상은 상호적이다. 형상은 추상을 내포하고, 추상은 형상을 암시한다). 그렇게 추상화에 대한 개념을 재정의하게 만드는. 추상과 형상의 관계를 재고하게 만드는. 추상과 형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지우는. 그렇게 이미지와 의미의 동일성을 재설정하는(그림이 움직이면, 그러므로 그림이 달라지면 의미 또한 달라진다. 그림이 매번 움직이면, 그러므로 그림이 매번 달라지면 의미를 결정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작가는 어쩌면 움직이는 이미지를 통해서 움직이는 의미를, 비결정적인 의미를, 결정적인 의미로는 환원되지 않는 이미지를, 의미론적으로 열린 이미지를 겨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움직이는 이미지에서 움직임이 좀 크게 느껴진다면 경계 위의 이미지, 파동 하는 이미지, 경계 위에서 떠는 이미지라고 해도 좋다).
강원에서 제주까지. 작가는 강원도 양구에서 제주에 이르는 여정을 걷는다. 사실은 박경리 선생의 토지 문학관(원주), 양구 군립 박수근미술관, 제주의 문화공간 양, 그리고 공주 문화예술 창작촌 내 창작 레지던시를 순례한 것이지만, 그에게 레지던시 그러므로 잠시 머물다 가는 장소를 순례하는 것은 곧 잠시 머물다 가는 삶을 순례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순례하면서 사색한다. 사유할 수 없는 것을 사유하는 여정이다(작가 노트). 사유할 수 없는 것을 사유하는? 경험보다 이미 먼저 와 있었던 것, 그러므로 선험적인 것을 사유한다. 의식 이전에 이미 먼저 와 있었던 것, 그러므로 선의식적인 존재를 사유한다. 의미의 바깥(모리스 블랑쇼)을 떠도는 것들, 그러므로 유령(아리스토텔레스)을, 잉여(조르주 바타이유)를, 존재 자체(하이데거)를 사유한다. 풍경을 매개로 사유하는데, 그에게 풍경은 작가가 그토록 붙잡고 싶은, 의미의 바깥을 떠도는 것들의 처소다. 메를로 퐁티는 주체와 세계는 이미 한 몸이라고 했는데, 그러므로 그가 그리는 풍경은 곧 자기를 그리는 것이 된다. 자기라는 세계를, 자기라는 전망을, 자기라는 전경(정경)을, 자기라는 풍경을 그리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그에게 걷는 것(순례하는 것)과 사유하는 것 그리고 그림(풍경)을 그리는 것은 하나다. 그림(풍경)은 다만 그 결과일 뿐. 존재의 증명일 뿐. 그러므로 걸으면서(순례하면서) 풍경(자기)을 그리는 작가의 여정은 자기반성적인 삶(잠시 머물다가는, 자기라는 장소)의 알레고리가 된다.
젖은 풍경과 마른 풍경. 작가는 길을 걷는다. 바깥을 떠돈다. 그렇게 길을 걸으면서, 바깥을 떠돌면서 풍경을 그린다. 그에게 풍경은 열려있다. 그렇게 열려있는 풍경을 그린다. 심지어 작가가 그림으로 닫은 이후에조차 여전히 열려있는 풍경을 그린다. 그러므로 풍경의 바깥을 그린다. 낮에는 마른 풍경을 그리고, 밤에는 젖은 풍경을 그린다. 여기서 마른 풍경과 젖은 풍경은 실제의 낮과 밤과는 상관이 없다. 햇빛이 쨍한 날, 사막처럼 바싹 마른 날, 존재의 형해(죽은 사물의 살과 뼈)가 오롯해지는 날이 낮에 속한다. 그리고 비 오는 날, 안개 낀 날, 먹구름으로 사위가 어둑해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날, 어스름한 저녁, 비존재가 눈을 뜨는 칠흑 같은 밤, 빛과 어둠이 자리를 바꾸기 직전의 새벽, 우울한 날, 내향적인 날, 대기 속에 세계를 숨겨놓고 있는 날, 그렇게 숨기면서 자기를 드러내는 날이 밤에 속한다. 그리고 작가는 낮보다는 밤이 더 좋다. 체질론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이지만, 그토록 붙잡고 싶은 비존재가 출몰해서 좋고, 자기가 오롯해져서 더 좋다. 작가의 그림에서 마른 풍경과 젖은 풍경은 장르로도 구분이 되는데, 주로 사물에 집중하는 드로잉과 목판화와 설치작업을 마른 풍경에 할애하고, 페인팅을 젖은 풍경 위주로 그린다. 그렇게 그린 풍경에서 사물 대상의 개별성이 무색하고, 지시성이 무색하고, 자기동일성이 무색해진다. 경계를 넘나드는, 경계를 허무는, 경계를 지우는 유기적인 덩어리로 나타난 실루엣이 분위기가 강한 그림이라고 해야 할까. 발터 벤야민은 아우라 그러므로 분위기를 원래 먼 것인데 마치 가까이 있는 것 같은 느낌(어쩌면 예술이란, 먼 것을 소환하는 기술?)으로 정의한다. 하이데거라면 존재의 현현 그러므로 존재가 현현하는 순간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라면 무렵, 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풍경을 매개로 거머쥘 수 없는 풍경의 일부 그러므로 풍경의 바깥을 그리고 있었다. 존재를 매개로 붙잡을 수 없는 존재의 부분 그러므로 비존재를 그리고 있었다.
글. 고충환 (Kho Chunghwan, 미술평론)
작품
한상진_파편 fragment-동백_종이에 수묵드로잉_29.7x42cm_2024(제주 화북_거로마을)
한상진_파편 fragment-동백_종이에 수묵드로잉_29.7x42cm_2024(제주 화북_거로마을)
한상진_파편 fragment-검은 돌_종이에 수묵드로잉_29.7x42cm_2024(제주 화북_거로마을)
한상진_파편 fragment-검은 돌_종이에 수묵드로잉_29.7x42cm_2024(제주 화북_거로마을)
한상진_무렵 timeless_종이에 수묵드로잉_29.7x42cm_2024(제주 화북_거로마을)
한상진_무렵 timeless_종이에 수묵드로잉_29.7x42cm_2024(제주 화북_거로마을)
한상진_무명 nameless_종이에 수묵드로잉_29.7x42cm_2024(제주 화북_거로마을)
한상진_무명 nameless_종이에 수묵드로잉_29.7x42cm_2024(제주 화북_거로마을)
한상진, 거로, 종이에 수묵드로잉_29.7x42cm_2024(제주 화북_거로마을)
한상진, 거로, 종이에 수묵드로잉_29.7x42cm_2024(제주 화북_거로마을)
한상진_검은 오름_종이에 수묵드로잉_29.7x42cm_2024(제주_영평동)
한상진_검은 오름_종이에 수묵드로잉_29.7x42cm_2024(제주_영평동)
한상진_검은 모살_종이에 수묵드로잉, 29.7x42cm_2024(제주_삼양해변)
한상진_검은 모살_종이에 수묵드로잉, 29.7x42cm_2024(제주_삼양해변)
한상진_원주_종이에 연필_14x21.6cm_2025(원주_치악산)
한상진_원주_종이에 연필_14x21.6cm_2025(원주_치악산)
한상진_무경계-환해장성_acrylic on canvas_21.2X33.5cm_2024(화북_환해장성)
한상진_무경계-환해장성_acrylic on canvas_21.2X33.5cm_2024(화북_환해장성)
한상진_불-가능성_acrylic on canvas_19.0x33.4cm_2025(선유로, 은행나무, 밤비)
한상진_불-가능성_acrylic on canvas_19.0x33.4cm_2025(선유로, 은행나무, 밤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