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what you see 사물에서 사유로


장 호 정

전시기간 : 2023. 4. 14 ~ 5. 4

신촌로 129, 아트레온 B2


작가노트


나의 작업은 일상 속에서 발견한 사물을 통한 사유에서 출발한다,

비닐봉지는 평범한 일상 속 물건보다 더 보이지 않는 사물이다. 그런 비닐봉지가 어느 날  기존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은 일종의 해석적 경험으로 나의 삶 속으로 들어와 내 삶과 존재의 은유적 투사물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이 단순히 주관적 은유로 생각하기보다 그 자체로서의 존재, 하나의 고유하고 객관적인 사물에 대한 사고로 진전되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닐봉지라는 사물에 대한 접근은 사물의 본성에 대해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유란 단순히 가시적으로 사물의 형상과 껍질을 보는 차원을 넘어 타자의 입장 즉, 사물의 깊이 속으로 들어감으로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고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사물 너머에 보이지 않는 어떤 세계를 인식하고 사유할 때 비로소 그 본질과 마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라 여긴다. 사물 너머의 보이지 않는 의미는 사물의 층위를 보다 깊이 있게 바라볼 때 찾을 수 있다.


한 편, 작품이 외형적으로 리얼리즘적인 측면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리얼리즘으로 분류되지만 일차적으로 보이는 외형을 비집고 들어가다 보면 대부분 공간에서 의외의 추상성이 눈에 들어오는 양상을 보인다. 그 안에 내재 된 추상적 요소와 가시성의 뒤편에 존재하는 내면 혹은 사유적 측면의 매력은 비닐 작업의 매력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전반적인 분위기나 형태를 유지해나가기 위해 페인팅 이전에 다각도로 촬영을 하지만 막상 실제 페인팅에 들어가면 페인팅을 하는 화면 안에서 다시 조율을 해나가며 완성 시킨다. 그 이유는 작품 안에서 연구자가 원하는 빛과 공간을 좀 더 내포하거나 덜어내며 자유롭게 작품을 이끌어가기 위함이다. 여기서 위에 언급한 내재 되어 있는 추상적 요소란 캔버스 안에서 조율해 나갈 수 있는 비닐의 주름이며 그 사이의 공간이다. 주름은 시간의 흔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요소이며 흔적의 반복이기도 하다. 작품의 공간 내에서 연구자의 내적 필요성에 의해 사실과 다르게 그려지기도 하는 주름 즉, 흔적들은 작업을 하는 동안 보다 깊은 사유의 대상으로 끌어가고픈 설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외형의 형태는 구상적이지만 내가 지향하는 부분은 표상 너머이며, 단순한 리얼리즘적 재현이라고 단정 짓고 싶지 않다. 내가 리얼리즘의 형식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이유는 우선 관객에게 형태적으로 친숙하게 다가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감성적으로는 낯선 것으로 다가와 평소 간과하며 살았던, 그 너머의 어떤 것을 찾고 발견하고 응시하는 순간을 공유하며 잠시 머물러주길 원한다.


즉, 리얼리즘적인 표현을 하는 것은 관객을 유인하는 수단이지 그 표현 방식에 나의 목적이있지 않다. 때문에 나의 작업은 극사실주의 작업이 아님을 밝혀둔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 더 잘 접근하는 법이다. 다시 말해 작품의 리얼리즘의 형식은 관객을 친숙한 사물에 쉽게 접근하도록 한 후, 그 후의 경험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장치이다. 해를 거듭해 작업을 해나가며 더 좋은 표현 방법을 찾게 된다면 나는 그 표현 방법을 새롭게 연구할 것이다. 그러나 작품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나의 창작활동에 있어 ‘표상 너머’라는 문제는 내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탐구해가고 싶은 회화의 중심 문제임은 변함이 없다. 내 작품의 영어 제목은 'Beyond what you see' 이고, 한글 제목은 ‘사물事物에서 사유思惟로’ 이다.


나의 작업은 현재 비닐로 만들어진 사물과 비닐봉지 자체를 그린 두 가지 타입이다.

우선 비닐로 만들어진 사물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비닐로 만들어진 사물은 먼저 비닐로 본을 뜬 후, 이를 사진으로 촬영하고, 이 사진을 다시 회화로 옮기는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사물을 비닐로 촘촘하게 감싼 후,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며 조심스레 벗겨내어 다시 사물을 감쌌던 원래의 모양을 복원해 가는 방식이다. 이렇게 될 때, 일상의 사물은 기존의 외피를 벗고, 전혀 다른 외피를 뒤집어쓴다. 이를 통해 사물은 원래의 기능과 개념, 물질성 등을 벗어나게 되고,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일상적인 시선을 거두고 사물 자체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바슐라르의 말처럼, 사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바꿀 때 그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동시에 이 작업은 구두나 의자의 외피를 벗겨냄으로써 구두나 의자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동시에 사물은 외피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것은 사물의 외피이기 때문에 어쩌면 사물이 겪는 탈피의 과정일 수도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존재하면서도 부재하는 것, 부재하는 공간에 관한 것일 수 있다. 


일상의 감각과 사유를 너머가는 것, 바로 이것이 예술의 매력이다. 이것이 예술가의 주관적인 관점의 해석이 보다 넓은 의미의 현상학적 입장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가벼운 무게의 비닐봉지가 공간 전체를 압도하는 무게로 위치하며 그 깊이감이 더해지길 바라며 작업을 하였다. 그림자가 없이 바닥에 굳건히 버티고 있는 비닐봉지는, 이미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비닐봉지를 너머 사유의 영역으로 길을 열어준다. 


들뢰즈는 "회화의 임무는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도록 하는 시도로 정의될 수 있다”

비닐봉지의 ‘힘’은 무엇인가 그것은 존재를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비닐봉지는 비닐봉지 이외의 다른 사물과 함께 존재했었음을 주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흔적으로 남긴다. 그것은 흔적의 대상을 숨기고 있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 대상의 존재를 직접 드러내고 있지도 않다. 단지 흔적으로 주름이 어떤 존재와 더불어 존재했었음 또는 현재 존재하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무無 이기도 하며 찰나刹那 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無라고 정의하는 순간 그것 또한 존재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 지점이 내가 작품에 등장하는 비닐봉지와 비닐로 감쌌던 흔적으로 남은 사물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은 ‘사물事物에서 사유思惟로’ 라는 테마이자 문제를 가지고 작품을 전개해 나가기 시작하게 된 단초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시간이라는 두께가 스며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며 품은 것이 비닐봉지의 ‘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여기서의 ‘힘’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다. 그것은 Beyond what you see라 할 수 있다. 표상 너머에 대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단지 제시, 혹은 암시할 뿐이다.


전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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