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과 푸름사이
조 은 령
전시기간 : 2023. 4. 14 ~ 5. 4
신촌로 129, 아트레온 B1
작가노트
아주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천지가 생성되기 전의 이야기인데 천지가 분화하기 이전에 모든 것이 섞여있는 혼돈의 시기가 있었다. 빛과 어두움조차 구분이 없는 그 상태를 이야기에서는 玄이라고 묘사했다. 어떤 물질로서의 색이 아닌 가물 가물한 어두움의 색이며 혼돈의 색이 玄인데 그 玄의 색이 먹의 색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먹만 있으면 모든 색의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내게는 신화 같은 이야기로 들렸다. 나는 이후로 먹에 의한 작업을 꾸준히 진행했는데, 퍼져 나가는 먹을 보면서 재에서 나 온 먹의 색은 모든 것의 귀결인 색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다. 무엇을 태워도 거기서 거기인 잿빛으로 환원되는 것이니까. 근데 墨竹을 회색 대나무로 보지 않으니까 거기서 거기인 그 재료는 많은 색으로 확산된다. 그런 면에서 신화와 같은 먹색에 대한 이야기를 반쯤 긍정한다.
몇 년 전 푸른색으로 대나무를 그렸는데, 왜 대나무를 초록이 아닌 청색으로 그렸나?하는 질문을 받았다. 그 때는 초록은 식물에 집중하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가 표현하려는 것은 대나무 숲에서 대나무 숲으로, 혹은 댓잎의 흔들림에서 내게로 전해지는 울림이었다. 초록보다는 청색이 공기의 가벼움과 흐름을 보여주니까...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는 직설적인 어법의 초록으로 식물들을 그렸다. 보이는 그대로의 색에 집중했다. 나의 머리는 비우고 나의 눈을 따라 식물의 구체성을 드러냈다. 즉 내가 본 개별의 몬스테라, 야자수...각 개체의 일대기 속의 푸르름으로 초록이 읽혀지길 바랬다. 즉 여기의 푸르름은 봄이며 미래가 내재된 현재 - 꿈을 품은 푸릇함이다.
처음 그림을 그렸을 때를 생각해보니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사용했고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그렸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작가가 될 것이고 확신이 생길 것이니까 더욱 나는 나답게 커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동양화를 택하고 경험이 쌓일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졌고 가능한 경우들이 충돌했다. 내린 결정들에 미련이 남았다. 시간은 지났으나 여전히 현재는 모호하고 선택에 까다로운 취향이 생겼을 뿐이다. 많은 것이 희석되어 나는 나의 색을 잃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먹의 잿빛과 내가 닮아가는 느낌이다.
이번 전시의 잿빛과 푸름은 색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색에 내재 된 의미와 개체의 일대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2023. 4. 조은령
전시 작품
조은령_잿빛과 푸름 사이–23326_린넨에 수묵담채_160x 80cm_2023
조은령_잿빛과 푸름 사이–233302_린넨에 수묵담채_160x 60cm_2023
조은령_빛과 푸름 사이–23323_린넨에 수묵담채_160x80cm_2023
조은령_잿빛과 푸름 사이–233302_린넨에 담채_72x60cm_2023
조은령_시간의 문–180305230305_린넨에 수묵,석채_160x40cm_2023
조은령_잿빛과 푸름 사이–23328_린넨에 수묵담채_100x100cm_2023
조은령_잿빛과 푸름 사이–2332-9린넨에 수묵_100x100cm_2023
조은령_잿빛과 푸름 사이–23325_린넨에 수묵_100x100cm_2023
조은령_잿빛과 푸름 사이–23314_종이에 채색_32x24cm_2023
조은령_잿빛과 푸름 사이-1_종이에 채색_32x24cmx62023
조은령_잿빛과 푸름 사이-2_종이에 채색_32x24cmx6_2023
조은령_잿빛과 푸름 사이–23316_종이에 채색_32x24cm2023
조은령_잿빛과 푸름 사이–23315_종이에 채색_32x24cm2023
조은령_잿빛과 푸름 사이–2331_종이에 채색_32x24cm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