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 Un Voyage


권 영 범

전시기간 : 2023. 11. 17 ~ 12. 7

신촌로 129, 아트레온 B1,2 

작가 노트


  

여행이란 어떤 사연과 이야기를 담고자 함은 아닐 것이다. 눈감고도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다면 먼 길 떠나는 여행자가 되듯 그렇게 고요합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 그렇게 침묵할 수 있는 자유이며 이 얼마 나 근사한가. 여행 끝에서 만난 풍경과 먼 길 돌아와 가뭇없는 일상 모두 여행이었다. 잊기 위함도 아닌 것이며 모든 것은 나에게로 떠나는 생활이었다. 꿈과 미련으로부터, 기억과 시간으로부터, 습관과 위로로부터, 나로부터, 지금으로부터, 떠나기이다.


The reason it took a long time is to leave your lips alone and heal the cruel present. Finding the freedom to be silent was the act of drawing, and for me it was a trip. It took me a while to figure out ways to overcome the stories of many nights with silence. Whether it is harsh accusations, nagging, sweet compliments, or just something that's been said, it is silent like the root of a big tree, unshaken by anything, and repeats its insistence like magic that it will not be broken. It was filled with moments of being alone with a sense of reality that became dull as time moved on. Fortunately, those times were on my side. I sincerely hoped that I would eat when I was hungry, lie down when I was tired, and stay awake when I was awake. Even though I was always with the work, I did not get angry or tied to the work. And I loved those times. Travel isn't just about telling a story. If you can look at the world with your eyes closed, you are approaching the world with such calmness as if you were a long-distance traveler. As such, the freedom to be silent is a valuable journey. The scenery I met at the end of the trip, the daily life that came from a long way back, the sunflower, the crystal of firm love, and the untitled picture... Raising the brush and facing the world is probably from 'nothing special'. It wasn't to forget, it was a journey and life for me. I just saw myself seeping into the screen. I stand in front of the painting, hoping to get away from all habits and comforts, from time and memories, from dreams and regrets, from me, and from the present moment.



평론글


  

어떤 여행


지창림(프랑스 렌느 2대학 조형예술학 박사)



그림은 노래나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언어이며 그것은 감성이 반영되어 가상적 경험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화가 권영범은 자신의 일상을 고스란히 운명처럼 받아들여,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팔랑프세트(Palimpseste)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은 그의 손바닥에 선명히 새겨진 생명선이 되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Ⅰ. 랭스대성당 천사의 미소 (Un sourire de la cathedrale)가 아름다운 그곳에서 권영범을 처음 만났다. 천장 높은 그의 아틀리에는 작업의 향기로 가득했다. 심오한 철학가의 명상을 좋아했고, 고단한 이방인의 삶 속에서 고운 선율의 노래를 부르는 그만의 욕망과 자유가 가감없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곳에서 예술가로서의 고민과 그의 내면적 작업관도 읽을 수 있었다. 

랭스(Reims) 시기의 작업은 구상적이며 자연적인 소재를 대상으로 고독과 꿈, 향수와 사랑을 독특한 라비랭트(미로, Labyrinthe)를 구축하면서 자유를 향해 날아가는 이카르(Icare)의 날개를 만들었다. 또한 추상적 세계를 동경하며 작가 자신만의 미로 안에서 폴 끌레와 마크 로스코, 이탈로 칼비노를 만났고, 상상의 도시와 풍경을 꿈꾸었다. 붓을 들어 인내하며 작업에 대한 자신의 운명선에 삶의 원동력과 생명력을 부여하였다.


Ⅱ. 퍼즐 조각보의 어떤 여행 (Voyage dupuzzle-Jogakbo)은 랭스 이후 또 다른 형태로 붓을 든 한국에서의 여정이다. 화려한 색상의 요리처럼, 나침반과 지도를 든 탐험가처럼, 고고학자의 세심한 붓놀림처럼 또 다른 퍼즐을 조각보 짜듯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그의 일상의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있다.

화면 속에 나타난 도시, 동물, 기호, 상징 그리고 문자와 메시지, 자유로운 색상과 빛은 때론 섬세하게, 때론 한 줌의 덩어리로 던져지고 그 모든 흔적들은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유혹한다. 한 올 한 올 자신의 뱃속에서 실을 뽑아내는 아라크네(Arachne) 거미처럼, 태양을 향해 사랑을 갈망하며 끝내 해바라기로 피어난 클리티에(Clytie)처럼,

사랑과 빛의 에로스(Eros)와 프쉬케(Psyche)처럼 그의 일상은 “어떤 여행"으로 가득했다. 자신의 운명처럼 받아들인 작가의 삶 속에서 그 자체를 스스로 이해하며 비움과 채움, 음과 양, 자연과 하늘, 그리고 사람과 조화를 이루어 화면을 재해석하려 했다.


Ⅲ. 주머니 속의 침묵 여행(Voyage du silence dans la poche)은 무수히 그어 내린 선들이 빛과 침묵으로 쌓여있다. 햇살 가득 창가에 투영된 여름 어느 날 근원적 아름다움과 추함은 묵직한 선들의 르바에비엥(Le va vient)의 무브망과 정중동(靜中動)을 통해 작가의 철학적 내면의 또 다른 여행이 되었다.

가장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은 수많은 선들 속에서 용트림하는 빛의 승천과 천사의 미소로 다시 수직으로 내려앉는 거대한 침묵의 선들은 그의 여행 주머니로 들어간다. 어디선가 소금기 머금은 푸른 미역 냄새도 나며 작가의 내면으로부터 투영된 일상의 나르시스로 발견된다. 그것은 영혼으로부터 시작된 여행이며 자신과의 싸움이다.


Ⅳ. 풍경 속으로 여행(Voyage du paysage interieur)은 마음으로부터의 여행이며 산책과 방황하는 인간 삶의 세계를 시적으로 풀어낸 추상과 구상의 경계선의 연작이다. 하늘과 땅, 자연으로 조화를 이루고 바람에 흔들리는 산사의 풍경소리는 만물(滿物)을 깨우며 화면의 공간 속으로 메아리 되어 울린다. 회잿빛, 우윳빛, 연보랏빛과 푸른 색의 몽환적 색상은 하늘의 수많은 별과 비바람, 그리고 폭풍으로 음영(蔭影)의 등대가 된다.

여기저기서 사랑의 크리티에, 프쉬케, 에로스, 나르시스 천사들이 뒹굴고, 또 풍경 속을 음유(吟遊)하면서 거닐고 있는 노승과 그림자를 끝없이 쓸고 있는 바람과 옹달샘 속에 빠진 달도 볼 수 있다. 

《바람으로부터 부채를 펴고 접는 것처럼 나뭇잎 흔들리고 속삭이듯 느끼고, 듣고, 보아라. 종소리 나즈막이 시를 부르고 나는 눈꺼풀 닫고 덧문 열고 닫는다》

붓을 들어 여행하는 화가 권영범은 그저 진행 중인 인내의 페넬로프(Penelope) 작업이다. 그것은 손바닥에 새겨진 운명 같은 생명선이기도 하다.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붓을 들어 화면을 마주하는 화가 권영범은 내가 아는 가장 묵직한 사랑과 열정, 침묵과 인내를 가진 진정한 예술가이다. 그의 여행은 위대한 영적 철학이다.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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